취미./독서노트

유시민 [나의 한국현대사 1959-2020] (3)

Place-B 2022. 7. 28. 16:55
반응형

 

5. 단색의 병영이 무지개색 광장으로

  • 인구감소는 나쁜 일인가?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지구촌도 대한민국도 인구가 줄어드는 게 바람직하다. 호모사피엔스는 천적이 없는 종이며 보이지 않는 세균과 바이러스까지 거의 다 통제한다. 스스로 개체증가를 억제하지 않으면 무한증식해서 생태계에 재앙을 안길 수 있다. 그런데도 호모사피엔스는 만족을 모른다. 개체 수가 80억에 다가섰고,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자연의 에너지와 자원을 소비하며, 지구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핵물질을 축적했고, 너무 많은 탄소가스와 화학물질을 배출해 지구 대기의 화학적 구성과 기후를 바꾸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 폐기물은 미세플라스틱이 되어 다시 인간의 몸속에 들어온다. 지구에게 인간은 암과 같은 존재다. 암 환자가 죽으면 자신도 죽는데, 암세포는 오로지 증식에만 몰두한다. 호모사피엔스의 행동양식이 암세포와 무엇이 다른가.
  • 사람의 생명과 존엄성도 ‘희소성(稀少性)’과 ‘지불 능력’이라는 경제논리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사람도 너무 많으면 대접을 받지 못한다. 물질적 능력이 없는 경우에도 그렇다. 많은 사람이 비참하고 가난하게 사는 사회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사람답게 대우하지 않으며 집단은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다. 산업화의 성공과 저출산 현상은 사람의 희소성과 가치를 높였다. 돈이 많고 자손이 귀하면 당연히 사람을 귀하게 여기게 된다. 스스로를 귀하게 여길수록 사람들은 부, 명예, 지위, 쾌락의 추구를 넘어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욕망에 더 끌리게 되며 자신의 존엄을 아는 사람일수록 타인의 존엄성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 난민촌을 병영으로 개조한 수단은 폭력이었다. 그러나 폭력만 가지고 나라를 병영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병영은 난민촌보다 살기가 나았다. 국가를 병영처럼 만들려면 국민의 기본적인 욕망을 채워줘야 한다. 무엇보다 세 끼 밥을 먹고 깨끗한 물을 마시고 옷을 입고 지붕과 벽이 있는 곳에서 잘 수 있어야 한다. 연로한 부모를 봉양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데 필요한 소득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병에 걸리지 않아야 하고 병이 들면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현실은 비록 힘들지라도 열심히 일하면 더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병영에는 군기가 있어야 한다. 국민이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조국 근대화라는 국가 목표를 개인적 인생 목표와 일치시키도록 ‘건전한 가치관’을 심어주고 사상과 이념을 통일해야 한다. 복종하는 자를 포상하고 저항하는 자를 엄벌함으로써 국가와 대통령을 두려워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산업입국’, ‘수출보국’, ‘잘살아보세’, ‘하면 된다’, ‘국론통일’, ‘체력은 국력’, ‘공장 일을 내 일처럼 근로자를 가족처럼’ 같은 구호를 곳곳에 걸었다. 출산율을 억제한 것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1인당 국민소득을 신속하게 높이기 위해서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빈곤의 악순환(vicious circle of poverty)’ 이론이 유행했고, 절대빈곤 극복이 최대 과제였던 대한민국은 그 영향을 받았다. 1961년 장면 정부가 세운 최초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 목표가 바로 ‘빈곤의 악순환을 타파’하는 것이었다. 그 이론의 요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가난한 나라는 가난하기 때문에 계속 가난하다는 것이다.
  • 가난한 나라는 사람이 많고 자본이 없다. 자본을 형성하려면 국민총생산 가운데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야 한다. 여기서 저축은 다음 시기 생산과정에 투입할 기계, 원료, 건물 등의 자본재를 생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을 부유하게 만들려면 사람들이 더 많은 물질적 자본을 가지고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전문용어로는 자본장비율을 높여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인구가 너무 빠르게 증가하면 자본장비율을 올리기가 어렵다. 물질적 자본뿐만 아니라 교육과 훈련을 통해 만드는 인적 자본도 축적하기 힘들다. 그런 나라는 계속해서 자본이 부족한 나라로 머물러 있게 된다.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선택한 방법은 일단 외국에서 차입한 자본을 지렛대 삼아 산업을 육성하고, 기업이 돈을 벌어 국적자본을 축적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숙련된 기술자가 필요하다. 숙련된 노동자를 얻으려면 교육과 훈련을 시켜야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녀를 너무 많이 낳았기 때문에 제대로 공부시킬 수 없었고, 무상교육을 시행할 만한 국가재정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은 국가로 보나 가정으로 보나 결코 바람직하지 않았다.
  • 밥을 먹게 해주고 겁을 주면서 국민을 복종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장기 집권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할 수만 있다면 국민이 스스로 복종하게 만드는 게 더 낫다. 그런 방법 중 하나가 교육과 미디어를 장악해 대중을 세뇌함으로써 사상을 통일하고 가치관을 통제하는 것이다. 국가의 목표를 자기 인생의 목표로 받아들인 사람은 겁을 주지 않아도 알아서 협력하고 복종한다. 이 일을 누구보다 잘해낸 것이 바로 북한 권력자들이다. 히틀러와 스탈린도 일시적으로 성공했다. 박정희 대통령도 똑같은 시도를 해서 절반 성공했다.
  • ‘국기에 대한 맹세’는 민주화시대에도 살아남았다. 충남교육청 공무원이 1968년에 처음 만든 맹세문은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서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였는데 문교부가 문구를 살짝 바꿔 전국 학교에 하달했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정부가 국민으로 하여금 국가에 대해 공개적으로 충성을 맹세하게 하는 행위를 아무 법률적 근거도 없이 강제한 것이다.
  •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든,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인가? 그 판단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우리 헌법이 국민 각자에게 준 것은 교육, 근로, 납세, 국방의 의무뿐이다. 그런데 교육과 근로는 권리에 가깝기 때문에 국민의 의무는 결국 소득을 얻으면 법에 따라 세금을 내는 것 그리고 건강한 남자라면 군대에 가는 것밖에 없다. 이것만 제대로 하면 된다. 다른 방법으로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지 말지는 각자 선택할 문제다.
  • 민주화 이후에도 국가주의 문화양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참여정부 막바지였던 2007년에야 정부는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로 국기에 대한 맹세의 문구를 약간 바꿨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이라는 국가주의적 표현을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이라는 ‘친헌법적’ 표현으로 수정하고 “몸과 마음을 바쳐”를 삭제한 것이다. 헌법상 주권자인 시민 개개인이 국가에 종속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이토록 지난하다.
  • 병영국가 권력자들은 노동자를 북한과 ‘국외공산계열’의 잠재적 협력자로 보았으며 그들이 계급으로 각성하거나 단결하지 못하도록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여기서 특별한 관심이란 철저한 감시와 무자비한 억압을 의미한다. 노동자들은 심리적 억압뿐만 아니라 생존권과 인권을 박탈당하는 물리적 고통도 겪어야 했다. 노동3권을 억눌렀고 노동조합을 개별 기업 단위로만 만들게 했으며 상부조직도 한 개만 허용해 한국노총 외에는 자주적인 연맹을 만들 수 없게 했다. 한국노총은 정부와 손잡고 자주적인 노동조합을 탄압했으며 전두환 대통령의 호헌선언을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1987년 여름 노동자대투쟁 때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으며 민주화 이후 선거 때는 편의에 따라 여당과도 연합했고 야당과도 연합했다.
  • 자주적인 노동조합연합체는 광장의 시대가 열린 후에야 나타났다. 1995년 11월 출범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다. 1996년 노동법 날치기 항의 총파업을 치르면서 대중적 기반을 구축한 민주노총은 산업별 노조를 기반으로 삼았는데 자동차 회사 노동조합들이 속한 금속노조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공공운수연맹 등이 핵심이다. 민주노총은 1997년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 이후 10여 년 동안 조직·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 민주노동당의 국회 진출을 도왔다. 하지만 만성적인 정파갈등과 대기업 노동조합의 자기중심적 행태 등으로 대중의 신망이 크게 하락했으며, 2008년 이후에는 10여 년 동안 정부의 노골적이고 일상적인 탄압을 받았다.
  • 장애인과 성소수자만 광장의 풍경을 바꾼 것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한국사회는 겪어본 적 없는 격동에 휩쓸렸다. 인류의 절반이면서도 소수자처럼 살아왔던 여성의 진군, 페미니즘(feminism)운동의 확산이 대단했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나는 미국 문화비평가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 1961~ )의 생각을 받아들인다. 페미니즘은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존엄한 인간이라는 사상’이다. 누구도 내놓고 부정하지 못할 만큼 당연해 보이는 이 사상이 ‘혁명성’을 띤 것은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 저출산 현상이 본격 시작된 1980년대 이후 여성의 역량과 지위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법과 제도와 문화는 제때 바뀌지 않았다. 그 둘의 불일치가 참기 어려울 정도로 커진 시점에서 페미니즘운동이 폭발했다.
  • 소련 동유럽 사회주의체제의 몰락으로 ‘사회혁명의 시대’는 막을 내렸고 인공지능과 유전공학이 대표하는 ‘과학혁명의 시대’가 열렸다. 지구촌의 경제와 정치는 자본주의와 대중민주주의로 수렴했고 노동운동도 체제를 구성하는 한 요소가 됐다. 이제 ‘사회혁명’의 성격을 지닌 것은 환경운동과 페미니즘운동밖에 없지 않나 싶다. ‘흑인 노예도 똑같이 존엄한 인간’이라는 사상은 결국 유럽과 아메리카의 노예제 폐지로 결실을 맺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노동자도 똑같이 존엄한 인간’이라는 사상은 사회주의혁명을 불렀다. 페미니즘운동 또한 ‘여성도 똑같이 존엄한 인간’이라는 사상이 진리인 한 완전한 성평등을 실현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민주주의 광장을 행진할 것이다.
반응형

6. 75 이어진 적대적 공존

  • 역사에 대한 지식은 어떤 유형의 정부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으며 또한 어떤 유형의 정부가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가에 대해서도 실마리를 제공한다. 사실 성공적인 정부의 세 가지 주요 적은 이데올로기, 도덕성, 공포다. - 버넌 보그다너, 『역사, 시민이 묻고 역사가가 답하고 저널리스트가 논하다』
  • 북한과 「국가보안법」이라는 냉전시대의 유산이다. 광장 한 귀퉁이에 있는 이 ‘출입금지구역’에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 또는 ‘허가 없이 접근하면 발포함’이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대한민국은 아직 완전히 자유로운 광장이 아니다.
  • 대한민국에는 배신자를 색출하고 처벌하는 일을 전담하는 국가기관이 여럿 있었다. ‘경찰청 대공과’, ‘국군보안사령부(‘기무사령부’를 거쳐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개편)’, ‘검찰 공안부’, ‘중앙정보부(‘안전기획부’를 거쳐 ‘국가정보원’으로 개명)’와 관련 기관들이다. 그들이 북한 편으로 지목하면 누구도 거미줄에 걸린 나비 신세를 피하지 못했다. 신문과 방송이 공안기관의 발표를 사실처럼 보도했고 반공정신에 불타는 지식인과 단체는 엄벌에 처하라고 소리쳤다. 한패로 몰릴까 봐 옹호해주는 이가 없었고 더러는 가족과 친지마저 등을 돌렸다.
  • 대한민국에는 북한을 이롭게 하는 언행을 처벌하는 「국가보안법」이 있다. 대한민국에 해롭지 않아도 북한에 이로우면 처벌할 수 있다. 예전에는 그런 사람을 쥐도 새도 모르게 끌고 가 혹독한 고문을 했다. 고문을 견디지 못해 허위자백을 하면 유죄선고를 받았고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직장에서 쫓겨났다.
  • 한반도는 아직 평화로운 땅이 아니다. 군사정전 상태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만약 또 전쟁이 난다면 군과 경찰은 반정부투쟁과 통일운동, 북한주민돕기운동에 참여한 전력이 있는 시민을 북한의 잠재적 협력자로 간주해 미리 즉결처분 할지도 모른다. 나는 북한을 좋아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는데도 그런 두려움을 느낀다.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는 단순한 반공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이념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지키려는 삶의 방편이었다. 북한 편으로 몰릴 위험을 피하기 위해 양심의 자유를 포기하고 자유와 권리의 박탈을 묵인한 정신적 병리현상이었다. 정부와 공안기관은 민족의 화해와 공존을 추구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을 ‘공산당’, ‘빨갱이’, ‘좌경’, ‘용공’, ‘친북’, ‘종북’이라고 모함했고 시민들은 침묵하거나 동조하는 시늉을 했다. 그것을 꼭 믿어서가 아니라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지키고 싶어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