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독서노트

리 매킨타이어 [포스트 트루스] (1)

Place-B 2022. 8. 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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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탈진실이란 무엇인가?

  • 사실 탈진실을 중립적으로 다루겠다는 시도 자체가 탈진실의 주된 특징인 기계적 중립성 빠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대 진영’에 속하는 사람들은 탈진실이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옹호하는 아니라 애초에 문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과 생각을 공유하지 않는 이상 탈진실에 관한 책을 때는 문제가 존재한다고 전제할 수밖에 없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도 양쪽 모두 공정하게 다루는 척해봐야 진실을 외면하게 뿐이다.

 

  • 거짓이 판치는 시대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곧 혁명이다.- 조지 오웰

 

  •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는 탈진실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 ‘포스트트루스post-truth’를 “여론을 형성할 객관적인 사실보다 개인적인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이라고 정의한다. 이때 접두사 ‘포스트post (전쟁 이후를 뜻하는 ‘포스트워postwar’와 달리) 시간 순서상 진실 ‘이후’라는 뜻이 아니라 진실이 무의미할 정도로 ‘퇴색’되었다는 의미다.

 

  • 2005년에 배우이자 방송 작가인 스티븐 콜베어Stephen Colbert 실제 사실과는 관계없이 사실처럼 느껴지는지에 따라 설득당하는 현상을 가리키기 위해 ‘사실스러움truthiness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 탈진실은 점점 많은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현실을 왜곡해 자기 생각에 끼워 맞추려고 애쓰는 세계적인 트렌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진실이 중요하지 않다고 외치는 캠페인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정치적 맥락에 따라 어떤 사실이든 마음껏 선별하고 수정할 있다는 신념으로까지 이어진다.

 

  • 탈진실은 그저 거짓말에 불과한 걸까? 정치적 화술에 지나지 않는 걸까? 엄밀히 따지면 그렇지 않다. 최근 탈진실 논쟁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탈진실’이라는 표현은 자체로 규범적이다. 진실이 공격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염려가 담긴 표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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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라톤은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거짓 주장하는 태도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소크라테스가 가르친 대로, 무지는 해결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지한 사람이 있다면 지식을 가르치면 된다. 오히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이미 진리를 알고 있다고 자만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러다 보면 충동적으로 잘못된 지식에 따라 행동할 있기 때문이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참과 거짓을 이렇게 정의한다. 존재하는 것에 대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거짓이다. 반면 존재하는 것에 대해 존재한다고 말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이다.

 

  • 본인 의도와 관계없이 실수로 진실이 아닌 말을 내뱉는 경우 생각해볼 있다. 이때 화자는 고의가 없었다는 점에서 ‘거짓말을 것’이 아니라 ‘거짓인 말을 발화’했을 뿐이다.
  • 다음으로는 진위 여부를 모르는 정보를 확인해보지도 않고 진실인 것처럼 말하는 ‘의도적 인식 회피’ 존재한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검증할 방법이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고 거짓인 말을 발화한다면 화자는 자신의 무지에 대해 부분적으로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
  • 마지막으로는 다른 사람을 속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거짓인 진술을 하는 ‘거짓말’이 존재한다. 자신이 하는 말이 진실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기만한다는 점에서 앞의 단계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 탈진실은 더욱 악랄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람들이 자기기만과 망상에 빠져 진실이 아닌 말을 진심으로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경우. 이때는 신뢰할 만한 출처라고 할지라도 논란을 피해 가지 못한다. 이처럼 탈진실 현상이 극단적인 수준에 이르면, 사람들은 대중의 반응이 ‘실제로’ 사실 여부를 바꿀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 탈진실 시대에 새롭게 나타난 중요한 문제는 현실을 파악할 있는지는 물론 애초에 현실 자체가 존재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이다. 개인이 잘못된 정보를 믿거나 오해를 저지르는 경우에는 개인이 대가를 치르면 된다. 예컨대, 누군가 심장병을 고칠 있는 신약이 나올 것이라고 착각하더라도 결과는 본인 병이 낫지 않는 데에서 끝난다. 하지만 사회의 리더가 혹은 사회의 다수가 기본적인 사실들마저 부정해버린다면 세계가 뒤흔들리는 결과가 초래될 있다.
  •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변화가 중국 정부가 미국 경제를 파탄내기 위해 고안한 사기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사실이 다른 어떤 사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문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모든 사실 일체를 부정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할 있는 사실만 선별해서 받아들이려고 한다. 여느 음모론자들처럼 자신에게 이중 잣대를 들이댈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들은 세계 곳곳의 기후학자들이 기후변화의 증거를 부풀리기 위해 공모하고 있다고 아무 근거도 없이 비난하면서도, 지난 20 평균 기온이 오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연구처럼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후 자료는 집어서 활용한다.

 

  • 진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사실에는 지나치게 높은 검증 기준을 들이대는 반면 자기 의견에 부합하는 사실은 덮어두고 맹신한다.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하는 사실만 진실로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 요점은, 진실 자체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확고히 하고자 탈진실 현상이 일어난다 것이다. 결국 탈진실은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우월주의 마찬가지다. 이러한 우월주의를 장착한 사람들은 충분한 근거가 있든 없든 자신의 신념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강제로 주입하려고 애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정치적 우위를 점하고자 한다.

 

  • ‘탈진실’이라는 표현은 영국 브렉시트와 미국 대선을 거치면서 최근에야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탈진실 현상의 기원은 수천 전에 인류가 (진보주의자니 보수주의자니 없이) 비합리적인 인지 능력을 발달시킨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이렇게 형성된 탈진실 현상은 오늘날 미디어 환경이 변화를 겪으면서 한층 심화되었다.

 

  • 지난 20 동안 점점 많은 사람들이 기후변화, 백신, 진화론과 같은 과학적인 사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현재 탈진실주의자들이 사용하는 기본적인 전략들 탄생했다. 인간 본연의 인지 편향cognitive bias(인간의 판단과 의사 결정이 비논리적인 추론에 따라 이루어지는 경향—옮긴이) 자극하고 진실에 대해 지엽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편파적인 방식으로 미디어를 이용하는 양상이 과거 보수 진영이 과학계를 공격할 때부터 이미 모습을 드러냈다는 뜻이다. 단지 오늘날에는 탈진실이 위협하는 대상이 ‘과학적 사실’에서 ‘모든 사실’로 확장되었을 뿐이다. 이전에는 자신에게 불리한 과학 이론에 의문을 제기했다면, 이제는 공원관리국에서 제출한 사진이나 CNN에서 내놓은 영상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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