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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탈진실을 이해하려면 과학부인주의를 보라
- 지난 수십 년간 과학계가 겪어온 일은 탈진실 현상의 예고편과 같았다. 한때 방법론 면에서 권위를 인정받았던 과학 연구는 이제 연구 결과에 동의하지 않는 수많은 비전문가들로부터 공공연한 의심을 받고 있다.
- 과학계에서 이처럼 높은 수준의 자기 검토 과정을 거치는데도 불구하고 비전문가들이 연구 결과에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과학자들이 검증에 해이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많은 경우 이는 겉으로 내놓는 변명일 뿐이다. 실제 이유는 학계에서 내린 결론이 자신들의 이념과 상충되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과학자들의 의도와 경쟁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된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과학부인주의 science denialism(널리 인정받는 과학적 사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과학적인 연구 방식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태도— 옮긴이)’가 탄생한다.
- 특정 연구 결과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흔히 펼치는 논리 중 하나는 연구자들이 편향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 그들의 동기는 과학적 존중심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연구 결과를 비판하는 비전문가들은 대부분 겉으로는 ‘개방성’과 ‘공정성’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만의 이념적인 잣대를 객관적인 탐구 과정에 들이민다. 과학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실증적인 탐구 방식이 가치중립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는 것이다. 일단 대중에게 의심을 퍼뜨리고 나면 사람들이 ‘다른 가능성’을 고려하도록 만드는 데에는 그리 많은 노력이 들어가지 않는다.
- 좀 더 지능적인 사람들은 “저명한 과학자들조차 높은 과학적 표준에 고착하지는 않는다.”고 비판한다. 실제로는 과학자도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연구를 진행하지만 속이 좁아서 그 사실을 인정하려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 그들은 연구자가 충분한 증거를 수집하기만 한다면 이론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과학 연구는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훌륭한 증거를 제시한다고 해도 과학 이론을 진리라고 입증할 수는 없다. 아무리 엄밀히 이론을 검증한다고 해도 ‘이론은 그저 이론일 뿐’이다. 논리적으로는 언제든 새로운 데이터가 등장해 이론을 반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과학 이론이 정당성이 떨어진다거나 신뢰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과학자가 아무리 강력한 설명을 내놓더라도 그것이 ‘진리’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으며 단지 증거를 기반으로 보증된 ‘믿음’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 과학자들은 과학이 전제하는 인식론적 한계를 전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진실을 탐구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미덕으로 여겨야 한다. 어떤 과학 이론이 증거를 기반으로 충분히 보증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다. 사실 실증적인 방법론이 지닌 높은 표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과학 이론을 대체하겠다고 등장한 유사과학 이론에도 동일한 입증 책임을 요구해야만 한다. 설령 ‘논리적 증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증거’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과학을 부정하는 사람에게도 “당신의 증거는 어디 있나요?”라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처럼 엄격한 기준을 들이댈 때마다 과학부인주의자들은 늘 흐지부지 대답을 회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작동하는 원리를 전혀 또는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진화를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엄밀히 따지면 지구가 둥글다는 명제조차 증명할 수는 없다)이 과학의 심각한 결함이라고 착각하면서 대안 이론을 꺼내 들 준비를 한다.
- 좀 더 과거로 돌아가 1950년대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바로 이 시기에 담배 회사들은 “담배가 폐암을 유발한다.”는 주장에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담배 회사에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결과 과학부인주의가 본격적으로 싹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과학부인주의는 경제적인 이유나 이념적인 이유 때문에 발생한다. 일반적으로는 가진 것을 잃기 싫어하는 자들이 처음 의혹을 던지면 역정보misinformation(고의적으로 유포된 잘못된 정보—옮긴이)를 퍼뜨리는 데 혈안이 된 정치꾼들이 바통을 이어받는 식이다.
- 담배산업연구위원회는 대중이 다음과 같은 확신을 갖도록 만들고자 했다. 첫째, 흡연이 암을 유발한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흡연과 암의 상관관계를 지적하는 기존 논문에 수많은 과학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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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힐의 전략은 적중했다. 담배산업연구위원회는 과학이 담배와 암 사이의 확실한 연결고리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면서(물론 ‘담배’와 ‘암’ 대신 다른 어떤 변수를 집어넣더라도 과학적으로 확실한 연결고리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수많은 신문에 전면광고를 내걸었다. 4,3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 광고를 보게 되자, 과학적으로 거의 매듭이 지어진 문제가 다시 혼란과 의혹에 휩싸이게 되었다.
- 담배산업연구위원회가 설립된 이유는 흡연이 암을 유발한다는 과학적 합의에 의혹을 제기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언론으로 하여금 담배의 위험성에 대해 두 가지 입장이 존재하며 두 입장 모두 똑같이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궁극적으로는 정치인들이 담배 회사의 경제적 이익에 타격을 입힐 근거를 찾지 못하게 만들었다.
- 담배 논쟁은 이후 40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1998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담배 회사들은 이후 소송으로부터 보호받는 대신 2,000억 달러를 배상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이와 함께 담배산업연구위원회 계승을 포기했으며 그들이 그때까지 줄곧 ‘진실’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내부 문서 수천 건을 공개했다. 합의를 마치고 자유를 얻은 담배 회사들은 대중이 담배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계속해서 세계 시장에 담배를 판매했다.
- 1969년에 한 담배 회사 중역이 남긴 악명 높은 내부 문건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우리는 의혹을 팝니다. 대중의 정신에 박혀 있는 ‘사실의 실체’에 맞서려면 의혹만 한 게 없기 때문이지요.”
비법은 분명했다. 자신만의 전문가를 구해 연구를 지원하자. 언론에 양쪽 입장을 다 들어봐야 한다는 인상을 남기자. 홍보 및 로비 활동을 통해 자기 입장을 밀어붙이자. 그로 인해 야기되는 혼란을 활용해 문제 삼고 싶은 연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자.
- 이러한 전략은 전략방위계획, 핵겨울, 산성비, 오존홀, 지구온난화 문제 등 여러 과학적 ‘논쟁’에 활용되었다.
- 2000년대 초반에 기후변화 문제가 당파적인 이슈로 부상했을 때에는 기업 자금을 기반으로 한 과학부인주의가 기름칠 잘 된 기계처럼 매끄럽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 청부받은 전문가들은 가짜 연구를 진행해 논란거리를 만들어냈다. 청부받은 선동가들은 TV에 나와 반복적으로 반대 논리를 제시했고 이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널리 퍼졌다. 필요한 경우에는 논란이 대중의 의식 속에 각인될 수 있도록 광고까지 제작되었다.
- 2016년 이후로는 메모가 유출이 되거나 실수로 불리한 진술을 하거나 모순된 발언을 한 영상이 증거로 나와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진실 개념 자체가 의문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과학부인주의자들은 어떻게 상황을 여기까지 끌고 올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들의 전략이 지구온난화 이슈를 중심으로 벌어진 전투에서도 대성공을 거둔 덕분이었다.
- 현대 과학을 부정하는 움직임 중 가장 지독한 사례를 꼽자면 그건 아마 지구온난화 이슈일 것이다.
- 《의혹을 팝니다》에서 오레스케스와 콘웨이는 오늘날 ‘지구온난화 논쟁’이 사실상 1950년대 ‘담배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주장한다. 자금의 출처가 담배 회사에서 석유 회사로 바뀌고,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곳이 담배산업연구위원회에서 하트랜드연구소Heartland Institute로 바뀌었을 뿐이다. 씁쓸하게도 초창기에 하트랜드연구소를 후원한 곳은 거대 담배 회사 필립모리스Philip Morris였다. 이후로는 당연하게도 거대 석유 기업 엑슨모빌Exxon Mobil이나 석유 재벌 코크 형제Charles Koch, David koch 등이 연구소를 꾸준히 지원해왔다.
-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성인 중 27퍼센트만이 ‘거의 모든 과학자들이 인간 활동을 기후변화의 주된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어째서 나머지 사람들은 기후변화가 실재한다는 사실은 물론 과학자들이 기후변화 이슈에 합의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혼란을 겪는 것일까? 이는 앞서 지적한 것처럼 경제적인 이득을 볼 수 있는 자들이 지난 20년 동안 거리낌 없이 의혹을 날조해왔기 때문이다.
- 1998년 세계가 중대한 기후협약(교토의정서)을 체결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석유협회American Petroleum Institute는 기업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워싱턴 D.C.의 사무실에서 여러 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 참석자 가운데에는 엑슨모빌, 셰브런Chevron, 서던컴퍼니Southern Company 등 미국 최대 석유 기업에서 나온 대표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조건
- 서민들은 기후과학의 불확실성을 이해해야(또는 인정해야) 한다.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 되어야 한다.
- 언론은 기후과학의 불확실성을 이해해야(또는 인정해야) 한다.
- 언론은 기후과학을 균형 잡힌 시선으로 다뤄야 하며 오늘날의 ‘일반적인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입장 역시 타당할 수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 기업의 고위 임원들은 기후과학의 불확실성을 이해함으로써 기후 정책을 정하는 사람들에게 더 강력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 과학계에서 기후변화가 실재한다는 입장이 다수라는 논리로 교토의정서를 지지하는 자들은 현실감이 많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 유출된 내용을 계속 읽어보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들이 사용한 핵심 전술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한 팀의 독자적인 과학자들을 모집해 언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 둘째, 비영리 교육 재단으로서 …… 세계기후데이터센터를 설립한다. 셋째, 국회의원들을 계몽하고 교육한다. 전부 익숙한 전술 같지 않은가?
- 핵심은 미국석유협회의 전략이 일주일도 되지 않아 완전히 까발려졌는데도 큰 성공을 거뒀다는 점이다. 더 이상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언론은 ‘논란’이 될 만한 어떤 과학 이슈든 ‘양쪽 이야기’를 유연하게 전달하도록 길들여졌다. 결과적으로 대중은 혼란을 겪었다. 덕분에 제임스 인호프James Inhofe와 테드 크루즈Ted Cruz 같은 공화당 주요 상원의원들은 물론 신임 대통령 트럼프까지 계속해서 “기후변화는 사기”라고 공언하고 있다.
- 오늘날의 정치인들이 과학부인주의가 남긴 교훈을 놓칠 리가 없었다. 이제 자신의 정치적인 술수를 감출 필요조차 없다. 증거를 확인하는 대신 팀을 하나 골라잡기만 하면 되는 당파적인 환경 속에서 잘못된 정보는 공공연하게 퍼져나가고 사실을 검증하는 과정은 쉽게 외면당한다. 새롭게 탄생한 탈진실 세계에서는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실만 선택적으로 이용하고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 사실은 완전히 부인하는 것이 현실을 창조해내는 핵심 수단이 되었다. 사실과 진실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겠지만, 정치적인 결과만 생각하는 사람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얻는 것도 없는데 굳이 자신의 언행이나 의도를 포장할 필요가 있을까? 수년 간 ‘출생 음모론(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태생이 아니며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주장)’을 조장하고도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지지자들이 실제 증거보다는 어느 편에 속하는지에 더 관심이 많다면 ‘사실’은 ‘의견’보다 아래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오늘날 탈진실 세계에서 활용되고 있는 전략은 과거 과학적으로 합의된 사실에 도전을 제기하고 승리를 거둔 과학부인주의자들로부터 비롯되었다.
- 다만 오늘날에는 진실 자체라는 더 큰 목표물을 대상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이념이 과학보다 우선하는 세계에서 ‘탈진실’이라는 운명은 결코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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