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독서노트

리 매킨타이어 [포스트 트루스] (3)

Place-B 2022. 8. 3.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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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탈진실의 뿌리에는 인지 편향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소망과 일치하는 미래만 내다보려고 하며 반기기 싫은 진실은 아무리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고 할지라도 외면하려고 한다.    -조지 오웰 

 

탈진실 현상의 근원 중 한 가지는 아주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해왔다. 인류 진화 역사 전반에 걸쳐 인간의 두뇌에 자리를 잡아왔으니 가장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바로인지 편향이다.

 

인간심리학의 핵심 전제는 인간이 심리적 불편함을 피하려고 애쓴다는 점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부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행동 패턴을 프로이트 이론에 따라자기방어ego defense’라고 정의한다.

 

 

사회심리학 역사상 유명한 가지 고전적 발견

1) 인지부조화 이론

1957년,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는 사회심리학 분야의 선구적인 책 《인지부조화 이론A Theory of Cognitive Dissonance》을 발표한다. 이 책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신념과 행동 사이에서 조화로운 지점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 조화가 무너질 때 심리적 불안감을 겪는다. 또한 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인간이 최우선 목표로 삼는 것은 자신의 자존감을 지켜내는 일이다.

 

페스팅거를 비롯한 학자들이 추후에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든 어느 정도 인지부조화를 겪기 마련이다. 예컨대, 헬스장 회원증을 등록했는데 헬스장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친구들에게 프로그램이 너무 격해서 일주일에 한 번만 헬스장을 가도 된다고 정당화할지 모른다. 유기화학 수업을 들었는데 원하는 성적을 받지 못했다면 애초에 의대를 갈 생각이 없어서 유기화학 성적은 중요하지 않다고 정당화할지 모른다.

 

인지부조화의 특성 가운데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주위에 동일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을수록 인간의 ‘비합리적인’ 경향이 더욱 강화된는 점이다. 만약 종말론을 혼자 확신하고 있다가 현실에 직면했다면 자살을 하거나 은둔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잘못된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과 함께한다면 때때로 정말 말도 안 되는 오류마저도 합리화할 수 있다.

 

2) 집단 동조 이론

1955년, 심리학자 솔로몬 애시Solomon Asch는 획기적인 논문 <의견과 사회적 압력Opinions and Social Pressure>을 통해 믿음에 사회적 속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인간은 자신의 믿음이 주위 사람들의 믿음과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설령 감각을 통해 직접 경험한 증거라고 할지라도 외면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인간은 ‘집단 압력’의 영향을 받는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 간에 서로 조화를 이루기 바라는 것처럼 주위 사람들의 믿음과도 조화를 이루기 바라는 것이다.

 

3)확증 편향 이론

1960년, 인간의 비합리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중요한 연구가 심리학자 피터 웨이슨Peter Wason에 의해 진행되었다. 웨이슨의 첫 논문 <인지적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가설 제거에 실패하는 현상에 관하여On the Failure to Eliminate Hypotheses in a Conceptual Task>는 인간이 추론 과정에서 습관적으로 저지르는 논리적·인지적 오류를 처음으로 밝혀내기 시작한 논문이다. 여기서 웨이슨은 탈진실 논쟁에 참여한 사람이라면 거의 모두가 들어봤을 법한 개념을 소개한다. 바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 현상이다.

 

 

인지 편향에 대한 현대의 연구들

출처 기억 상실source amnesia(습득한 정보가 무엇인지는 기억하지만 믿을 만한 출처에서 나온 정보인지는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은 인간이 믿음을 형성하는 방식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짐.

 

반복 효과repetition effect(메시지가 여러 번 반복될수록 메시지를 믿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현상)’ 역시 자동차 판매원이나 히틀러의 선전장관인 파울 요제프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가 이미 잘 이해하고 써먹은 내용이었다.

 

탈진실을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한 현상을 꼽아야 한다면 확증 편향의 뒤를 이어 밝혀진 두 가지 편향 현상을 떠올릴 수 있다. 바로 의도적 합리화motivated reasoning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역화 효과backfire effect’와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다

 

의도적 합리화’란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사실이 실제 진실을 인식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신의 감정적인 맥락 속에서 추론하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인지부조화 현상과 확증 편향 현상의 이면에도 분명 의도적 합리화라는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

 

의도적 합리화’는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믿음을 마음껏 비틀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정신 상태를 가리킨다. 반면확증 편향’은 이미 믿고 있는 사실을 확증하는 방향으로 정보를 해석함으로써 그러한 정신 상태를 실현시키는 메커니즘에 해당한다.

비교적 최근 연구에서는, 서로 다른 팀을 응원하는 스포츠팬들이 똑같은 경기 영상을 보고도 상충되는 판단을 이끌어내는 원인 역시 의도적 합리화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응원하는 팀에 너무 많은 것들이 걸려 있다고 판단하거나 응원하는 팀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어떤 사실도 인정하기 싫어하는 등 단지 자기 이익을 추구하다 보니 자기 팀에 유리한 내용만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신경과학자들 역시 의도적 합리화 현상을 연구해왔다. 그들은 인간의 추론 과정이 감정적인 정보에 영향을 받을 평소와는 다른 뇌의 특정 영역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실험에서는 열성적인 당원 30명에게 지지하는 후보나 반대하는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있는 내용을 추리하도록 지시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unctional-MRI 활용해 뇌를 촬영했다. 결과 중립적인 문제를 추리할 때와는 달리 참가자들 뇌의 특정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을 확인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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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화 효과

실험에 참가한 열성적인 정당 지지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반하는 증거를 맞닥뜨리자 증거를 부정하고 잘못된 신념을 계속 고집하려고 했다. 반대 증거를 확인한 뒤 잘못된 신념을 더욱 강화시키는 경우 있었다.

 

잘못된 믿음을 교정하려는 시도는 역화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정보를 확인한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잘못된 정보를 교정하지 않은 집단에 비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했다는 주장을 더 믿으려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진보주의자들의 경우 역화 효과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교정 정보가 ‘무효화’되었으며 진보주의자들의 잘못된 신념을 수정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진실에 맞닥뜨린 진보주의자들이 잘못된 신념을 ‘강화’했다고 볼 수 있는 증거는 없었다. 진실이 역화 효과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은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정치적 신념을 사실 증거를 가지고 바꾸려고 시도하는 것이 “기름에 붙은 불을 물을 뿌려서 끄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적어도 열성적인 보수주의자들 기준으로는 적절한 설명인 것 같다. 하지만 나이한과 레이플러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진보주의자든 보수주의자든 정치적 신념이 아무리 확고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사실 증거에 따라 신념을 수정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당파심이 강한 사람이라도 동일한 반대 증거를 반복적으로 접하는 경우 교정 정보에 점차 동조하게 것이라고 추측했다. 데이비드 레드로스크David Redlawsk 등이 진행한 연구에서는 ‘의도적 합리화에 빠진 사람들’이 결국 현실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끊임없이 현실을 부정할 것인지 탐구했다. 레드로스크 팀이 내린 결론은 나이한과 레이플러가 추측한 내용을 지지했다. 정치적 신념이 아무리 확고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믿음에 반하는 증거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결국 ‘티핑포인트tipping point(작은 요인들이 서서히 쌓이고 쌓이다 일순간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하게 되는 분기점—옮긴이)’에 이르러 신념을 바꿀 있다 것이다.

 

 

더닝-크루거 효과

더닝-크루거 효과는 저능한 사람이 자신의 저능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과 관련된 인지 편향이다(때때로 ‘너무 멍청해서 멍청한 줄도 모르는 현상’이라고도 한다). 물론 모든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는 더닝-크루거 효과에 쉽게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1999년에 수행한 실험에서 데이비드 더닝David Dunning과 저스틴 크루거Justin Kruger는 실험 참가자들이 거의 혹은 전혀 경험이 없는 분야에 대해서도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의 운전(혹은 사랑) 실력이 ‘평균 이하’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더닝과 크루거는 이러한 경향성이 여러 방면에 적용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피실험자들은 지능지수나 유머 감각은 물론 논리학이나 체스처럼 고도의 숙련도를 필요로 하는 능력에서까지 자신의 점수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더닝과 크루거가 지적하는 대로, “무능력한 분야에서는 자신의 무능함을 알아차릴 능력조차 부족한 것이다. …… 특정 분야에 숙달하고자 한다면 일정한 기술을 습득해야 하는데, 바로 그 기술이 해당 분야의 숙련도를 평가하는 데에도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은 수행 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사람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한 학생들은 그저 다른 사람을 속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자기기만에 빠진 것이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약점을 보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감정적인 애착을 느낀 나머지(때로는 정치적 신념을 정체성의 일부로까지 느낀 나머지)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는커녕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사실보다 자신의 ‘본능적인 직감’을 앞세운다고 하더라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2015년에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공화당의 제임스 인호프 상원의원이 기후변화를 ‘논박’하겠다며 화두를 꺼내놓았을 때, 과연 인호프 의원은 ‘기후’와 ‘날씨’도 구분하지 못하는 자신이 얼마나 무식해 보일지 생각이나 했을까? 아마 못했을 것이다. ‘너무 멍청해서 자신이 멍청한 줄도 모르는’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이 ISIS(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에 대해 군 장교들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고 주장했을 때 진심으로 본인 말을 믿기는 했을까? “글쎄요, 제가 그쪽 분야에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말이죠.”라고 말한 뒤 가만히 입을 닫고 있으려는 사람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은 “침묵을 지키다 무식하다는 취급을 받는 쪽이 괜히 입을 열었다가 무식함을 증명하는 쪽보다 낫다.”라는 오래된 격언을 망각한 채 계속 자기 신념을 밀어붙인다.

 

인지 편향 현상은 명료하게 생각하는 능력을 앗아갈 뿐만 아니라 명료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인식하지 못하게 막는다.

 

애초에 인간이 왜 이러한 인지 편향을 갖게 되었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진화론적으로 따져보면 진실은 가치가 있지 않나? 진실을 믿고 있는 사람이 생존할 확률도 높은 것 아닌가?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수많은 인지 편향이 우리 뇌의 일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에게 인지 편향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는 결코 바꿀 수 없다. 진보주의자에게든 보수주의자에게든 인지 편향은 인간으로서 유전되는 성질 중 일부다.

 

하지만 일부 인지 편향 현상은 개인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다르게 작용할 수 있다. 예컨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역화 효과는 진보주의자에게 덜 영향을 미치는 경향이 있었다.

 

한 실험 연구에서는 뇌에서 공포심과 관련되어 있는 편도체가 진보주의자보다 보수주의자에게서 더 크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2016년 미국 대선에서도 대다수의 가짜 뉴스가 보수주의자들을 겨냥했던 것이라고 추측한다. 음모론을 퍼뜨리고 싶다면 보수 진영에 퍼뜨리는 쪽이 더 확실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뜻이다.

 

 

인지 편향이 탈진실에 미친 영향

과거에는 인간이 다른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과정 속에서 인지 편향이 상쇄되기도 했다. 부족, 마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반드시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일하며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디어가 범람하는 현대에는 자신의 생각과 상반되는 생각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기가 더 쉬워졌다. 인간은 서로 대화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다양한 견해에 노출된다. 이러한 과정이 인간의 사고력에도 도움이 된다는 실증적인 연구 역시 존재한다

 

캐스 선스타인Cass Sunstein은 《인포토피아Infotopia》라는 책에서 개인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경우 혼자서는 알아차리지 못했을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일명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큰’ 현상이다. 선스타인은 이를 ‘상호작용하는 집단 효과interactive group effect’라고 부른다.

 

집단은 개인을 능가한다. 신중하게 상호작용하는 집단은 수동적인 집단을 능가한다. 집단이 함께 문제를 검토하는 시간에 구성원들이 각자의 생각을 터놓고 얘기한다면 정답을 찾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진실을 찾고자 하는 사람은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충분히 의심하며 다른 사람의 검토를 받을 때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상호작용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져 있다. 정치적 신념이 어떻든지 간에 본인이 원하는 ‘뉴스 사일로’ 속을 살아갈 수 있다. 페이스북에서 누군가가 남긴 댓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친구 삭제’를 하거나 ‘숨기기’ 기능을 이용하면 된다. 음모론에 한껏 심취하고 싶다면 종일 음모론을 소개해주는 방송 채널을 찾아보면 된다.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로만 주위를 가득 채우기가 이전 어느 때보다 쉬워진 것이다. 게다가 일단 사일로 속에 들어가고 나면 자신의 생각을 집단의 생각에 맞춰야 한다는 압력이 더욱 강해진다.

 

자신이 진보주의자인데 이민자, 동성 결혼, 세금 문제에 있어서는 친구들과 생각이 같지만 총기 규제 문제에 있어서는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불편한 감정이 느껴질 것이다. 이때 개인은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고칠지도 모른다. 이러한 결과가 비판적 상호작용을 거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친구들을 불쾌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욕망 때문에 나온 것이라면 썩 좋은 일은 아니다. 상호작용하는 집단 효과의 어두운 측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기계적 중립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거나 진실이 이념과 이념 사이에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진실과 거짓의 중간 지점도 결국은 거짓이기 때문이다.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어떠한 정치적 이념도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진보주의자가 보수주의자에 비해 ‘인지적 욕구’가 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보주의자가 우월하다거나 진보주의자의 정치적 직관이 곧 사실 증거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는 없다.

 

정치적 이념에 따라 순응하는 태도가 얼마나 위험한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모두는 인지 편향을 타고나기 때문에 눈앞에 놓인 증거를 외면한 채 주위 사람들의 믿음을 여과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사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집단 소속감을 가치 있게 여기며 때로는 현실 자체보다 중요하게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진실을 소중히 여긴다면 반드시 인지 편향과 맞서 싸워야 한다. 인지 편향 현상만큼 탈진실의 뿌리가 되는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사실을 믿고 싶다는 의지를 이미 가지고 있다면, 게다가 우리 주위 사람들마저 사실을 믿고 있다면, 아주 사소한 자극만으로도 우리는 사실을 믿게 것이다. 이를 알고 있는 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의도를 밀어붙이기 위해 정보를 얻을 있는 출처를 모두 불신하게 만든 사람들의 인지 편향을 자극해 그들을 손쉽게 조종하고 이용하려고 한다. 하지만 어디로 도망하더라도 인지 편향 자체를 피할 수는 없는 것처럼 뉴스 사일로 속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탈진실 현상을 막을 수는 없다. 사실 탈진실은 정보의 출처와도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결국 정보를 얻기 위해 출처에 의존한다. 그런데 만일 해당 출처에서 정확히 우리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나온다면 우리는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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